이편 작은 현판의 글씨가 개국하고 이 나라 최초로 의원 취재의 고시관이던 정도전의 필체요.다가온 안개가 세 사람을 감싸고 흐르기 시작했다.그렇긴 합니다만, 무슨 영문이시온지?세상 그 변덕스러운 인심을 한귀로 흘리며 허준이 자기 집 글방에서 다시 내의원 취재 시험 준비에 몰두하던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소문 하나가 허준의 귀에 들어왔다.의업에 바탕이 될 세상 구경이라니요?밤사이 도성내의 통금이 풀리는 오경삼점 파루소리였다.자매가 함께 방을 들었고 자매를 전송해온 오라버니가 윗방을 정하였기에 아침에 잠을 깬 자매는 길상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어도 그 장난꾸러기가 언제 오라버니의 방에 건너가 재롱을 떠나보다 여기어 무심했었다.옷은 이러이러한 옷을 입고 나이는 얼마이고 모습은 이러이러한 아인데 흑 누가 데리고 가는 것을 못했느냐고.옥색 삼회장저고리에 남치마를 받쳐 입고 매매인이 그 가슴에 노리개처럼 어여쁜 수실로 감싼 침낭을 달고 있었다.나는 단양 사는 우공보올시다. 허준 그분이 틀림없다니 정말 반갑습니다.허준은 목탁을 치는 주인공이 김민세임을 확신하며 너와집 처마 밑으로 향해 갔다. 불공에 즈음하여 방문은 여느 절처럼 활짝 열려 있었다.그러나 그 의문에 찬 두 사람을 유의태는 돌아보려고도 않았다.누워 있는 것은 분명 유의태였다.우공보가 그 얼굴에 삿대질을 놓으며 나도 밤새 한숨도 눈 못 붙치고 당신들 병 봐준 사람인데 배은망덕한 것 같으니. 하고 붉으락푸르락 목에 핏대를 세웠으나 돌아온 것은 마을 사람들의 흰 눈자위뿐이었다.나도 허준이다.병자의 숨결에 네 호흡도 맞추어라.하고 김민세가 말했으나 허준이 계속했다.내일 사시까지 2백60리.이틀 후 내의원 정문에 이번 취재의 입격자들의 이름이 방에 올랐다. 9백28명의 응시자 중 입격자가 7명, 일곱 명 중에 여섯 번째에 유도지의 이름이 있었다. 객관에 쓰러져 있는 허준은 그 소식을 상화로부터 전해들었다.유의원 같은 사람이 있기 망정이지, 아 유의태 같은 의원이 고을마다 있는 긴가? 아니란 말다. 그렇다면 생각해보라모.
늙은 양부의 손을 잡아끌고 온 길상이가 유의태의 앞에 이르자 뒤로 물러나 예의를 지켰다.어느새 뒤따라 들어온 떠꺼머리가 아들 부부를 대신해 소리쳤고 정상구도 우공보도 따라들어왔다.당황하지 않을 게야. 곧 방법을 찾아내겠지. 유의태란 존재에 얽매이지 않는 방법으로.귀는 이부, 눈은 안정, 눈썹은 안정썹, 눈물은 옥루로허준의 가슴속에 한가닥 야속함이 비껴갔다. 그러나 다음 순간 허준은 자신의 그 여린 감정을 거부하듯 고개를 저었다.떠꺼머리가 잠시 압도되어 망설이자 허준이 돌아섰고 순간 그 등뒤에서 떠꺼머리의 호홉이 폭발했다.지세로 보아 암벽 사이에 암자라도 하나 있는 게로군.허준이 갑자기 상대에게 실망하기 시작했다.무주에서도 보았고 보은에서도 보았었다. 무주 주막에서 본 그들은 전라도 쪽에서 올라오는 의원들인 듯했고 어젯밤 보은 주막에서 한방에 든 인물들은 경상도와 강원도 쪽 어디에 사는 의원들인 듯했다..!앞으로 두 달 반올시다. 올라갈 노정을 생각하면 길어야 두 달 . 촉박한 시일임에는 틀림없으나 내 몸이 부서질 걸 각오하여 취재공부에 매달릴 겯심이오니 노자의 말을 믿어주시어 다시 한번 참고 견뎌주소.가지고 온 약이 없어 우선 처방부터 써 드리겠으나, 그러나 없는 살림에 비싼 약을 먹을 순 없을 것이니 일변 또 집에서 고칠 수 있는 방법에 게을리하지 마십시오.상화가 문 밖에서 들은 건 거기까지였다.부릅뜨면 불빛과 성깔이 한꺼번에 타오르는 고집스러운 눈이었다.허준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갈 거리가 못 됩니다. 가지 마십시오.만에 하나라 . 그건 아예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그래 .그때 불도 없는 방안에서 문득 늙은 여인의 기침소리가 났고 돌연 떠꺼머리가 허준에게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그런 사람들일수록 소문의 실태를 바로 알려고 하기 전에 흥미 위주로 사건을 풀어갔다.남쪽 끝 바닷가 거기서 구하지 못하면 제주도까지 .그 휑뎅그렁하니 비어버린 병사에는 만석모와 간병하는 허준의 아내 김씨 외 마당에는 허준의 어머니 손씨가 서성댔고 그 한구석 평상 위에는 술취한 만석이가